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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산백병원 “나눔은, 또 다른 누군가의 새로운 시작입니다”
등록일
2012.03.13
조회수
4663

부산백병원 흉부외과 조광현 교수-최경순님

"나눔은, 또 다른 누군가의 새로운 시작입니다." 
사람이 누구에게나 항상 좋은 사람일 수는 없듯이 아무리 훌륭한 의사라 할지라도 어느 환자에게나 다 훌륭할 수는 없다. 사람의 몸은 변수가 너무 많고 따라서 좋은 의사를 만나는 것도 인연이 되어야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볼 때 부산백병원 흉부외과 조광현 원장과 최경순(66세)님의 인연은 각별해 보인다.
10여년전 의사와 환자라는 평범한 인연으로 시작되었지만 최경순님에게 조광현 교수는 새생명을 갖게 해준 생명의 은인이고, 그 인연으로 평생소원이었던 봉사활동을 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조광현 원장에게도 최경순님은 특별하다. 부산, 경남지역 첫 심장이식수술 성공이라는 기쁨과 함께 지방이라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던 부산백병원 장기이식센터의 위상을 높이는데도 크게 기여하였다. 조광현 원장과 최경순님을 만났다.(조광현 원장=‘조’, 최경순님=‘최’로 기재)


현재 최경순님의 상태는 어떠한가?
조: 아주 상태가 좋다. 지난번 치질 때문에 고생을 했었는데 큰 수술을 한 사람치고는 건강한 편이다. 본인이 살려는 의지가 강하고, 워낙 심성(心性)이 밝고 따뜻한 분이라 봉사활동도 열심히 하시는 걸로 알고 있다.
최: 3개월에 한번씩 피검사도 하고 면역억제제를 처방받아 꾸준히 먹고 있다. 이식수술을 받은 사람은 감염 등의 위험성 때문에 평생 면역억제제를 먹어야 한단다.


이식수술 당시 최경순님의 상태는 어떠했나?
조: 이미 심장판막수술을 2번이나 한 상태였고, 1997년 당시 심근종과 신부전으로 심장이식 이외의 방법으로는 생명구제가 불가능한 상태였다. 조직이 맞질 않아 몇번의 시도가 불발되고 세번의 기다림 끝에 수술했는데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최경순님의 심장이식수술 성공은 부산, 경남지역 최초의 심장이식 성공이었고, 언론에도 대대적으로 보도되어 장기이식에 관한 국민적인 관심을 끌어냈다. 또 부산시의사회에서 공로를 인정하여 부산시의사회 의학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최: 당시는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을 정도로 건강도 안 좋았고 또 개인적인 형편도 최악이었다. 이식만 받으면 살 수 있다고 했지만, 모시고 계신 어머님이 치매로 병환 중이셨고, 아들 둘은 모두 군대 가있는 상황이어서 정말 약 먹고 죽으려고 했다. 하지만 이렇게 허망하게 죽으면 아들들에게 큰 상처가 될 것 같아,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으로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다녔고, 그랬더니 길이 보였다. 장기등록을 해놓고 수술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였지만, 당시에는 뇌사자 인정도 안되어 언제 수술할지 몰랐고, 또 지방에서 심장이식의 성공사례가 없었던 터라 남편의 반대도 심했다. 그래도 수술받을 수만 있다면 수술 중에 죽더라도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았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주님의 곁으로 가겠다고, 나의 몸이 또다른 이에게 희망이 될 수 있게 장기와 시신 기증에 서약하고 수술실로 들어갔다.


부산, 경남지역 첫 심장이식수술이라는 부담감이 컸을 텐데?
조: 1997년 당시에는 장기이식법이 통과되지 않아 뇌사자 인정이 되지 않는 상태라 장기를 구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심장이식수술을 위한 최첨단 장비와 시설, 최고의 인력 등의 완벽한 체계를 갖추고도 지방이라는 한계로 수술이 미뤄지는 경우가 많아 최경순님의 강력한 의지가 없으면 수술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당시 뇌사자 김모(41세)씨의 장기는 심장뿐만 아니라 간, 신장, 각막 이식이 이루어져 간이식을 제외하고는 4명이 고귀한 생명을 얻었다.
최: 무조건 원장님을 믿었다. 이미 몇번의 수술을 받은 바 있고, 모든 사람들이 이젠 죽는다고 말렸던 심장이식 수술을 통해 새생명을 얻었으니 나는 이제 죽어도 후회도 여한도 없다. 나는 부산백병원의 팬이다. 지금도 장기이식센터에서 무슨 행사가 있으면 하던 일을 제쳐놓고 찾아가서 허드렛일이라도 도우려고 한다. 그런 나를 보고 사람들은 ‘장기이식센터 홍보도우미’라고 이야기 할 정도다. 처음 원장님을 만났을 때 중학생이었던 큰 아들이 자라 결혼할 나이가 되자 원장님이 흔쾌히 주례도 봐주셨다. 나에게 생명을 주신 분이 아들의 주례까지 서주시다니…, 결혼식장에서 참 많이 울었다. 우리 가족들에게 원장님은 정말 고마운 분이시다.


봉사활동을 하게 된 계기는?
최: 어려서부터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수술후 장기기증자를 위해서라도 봉사하는 것이 당연한 도리라고 생각했다. 10년 전부터 개인적으로 직접 병원과 병실을 찾아다니며 도움이 필요한 분들에게 말동무도 해드리고 수발도 도왔다. 현재는 부산백병원 가톨릭 원목회에서 호스피스 등의 정식교육을 받고, 안내봉사를 하고 있다. 가끔 병실에서 내가 큰 수술을 했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찾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가서 말동무를 해드리면 그렇게 좋아하실 수 없다. 집에 가만히 있으면 병이 날 것 같아 직장을 다니고 있는데 출퇴근할 때는 항상 여유있게 지하철을 탄다. 지하철에서 만난 할아버지, 할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손도 잡아드리고 또 거동이 불편하신 분들은 부축해서 안내도 해드리는데 그렇게 좋아하실 수가 없다. 노인들이나 환자나 모두 손을 잡아주고 체온을 함께 느끼는 것이 바로 사랑이고 봉사인 것 같다.
나도 심장수술한지 10년이 되었고 나이도 있는데 전혀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약 때문에 다리도 붓고, 얼마 전부터는 씹는 것이 힘들어 치과를 같더니 잇몸수술도 해야 한다는데 형편이 여의치가 않다. 하지만 나로 인해 그들이 잠깐이라도 행복할 수 있다면 나 역시도 행복하고 고마울 뿐이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이나 바람이 있다면?
조: 3,500례 이상의 개심술을 달성하는 등 독보적인 성공을 거두어온 부산백병원는 최경순님의 수술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총 6명의 심장이식수술을 성공했다. 현재 5명은 매우 건강한 상태이며, 이식 전부터 상태가 암 전이 등으로 좋지 않았던 1명은 사망하였다. 지방이라는 인식의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부산백병원 장기이식센터는 2002년 뇌사판정대상자관리기관으로 선정되어 서울아산병원에 이어 전국에서 두번째로 뇌사자 관리가 잘 이루지는 병원이다.
“나눔은, 또 다른 누군가의 새로운 시작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장기기증은 가장 깊은 사랑을 나누는 의료이고, 인술의 꽃이며 사랑의 결실이다. 장기이식센터가 발전하고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홍보와 노력이 필요하고, 앞으로 심장뿐만 아니라 간, 신장, 췌장 등 다장기 이식이 성공하는 병원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지원할 것이다.

최: 올해로 수술한지 10년이 되었다. ‘아이들 결혼할 때까지만 살자’ 마음먹었던 그 10년 동안 아이들은 대학 졸업해서 반듯한 직장도 구했고 결혼해서 손자손녀도 생겼다. 남편의 칠순잔치도 했다. 이제 더 이상 바라는 것은 없다. 그저 노인환자들을 돌보며 봉사하면서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