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좋은인연

서울백병원과 좋은 인연을 이어갑니다.


한국 최초 민립공익법인 백병원 설립 70주년 기념 ‘백인제 기념 심포지엄’ 개최
  • 등록일2017.01.12
  • 조회수3413

인제대학교 의과대학에서는 지난 12월 9일(금) 오전 11시 부산 개금동 의과대학 1층 강당에서 한국 최초 민립공인법인 백병원의 설립 70주년 ‘백인제 기념 심포지엄’을 개최하였다. 이날 심포지엄에는 인제학원 이혁상 이사장, 인제대 차인준 총장, 부산백병원 오상훈 원장, 해운대백병원 문영수 원장을 비롯하여 내외빈 200여명이 참석하였으며 축사, 개회사에 이어 선각자 백인제(白麟濟, 1899~?) 박사의 삶과 한국 최초 민립공익법인 백병원 설립의 역사적 의의에 대해 총 3부로 나누어 진행되었다.

한국 최초 민립공익법인 백병원 설립 70주년 기념 ‘백인제 기념 심포지엄’ 개최
- 선각자 백인제의 삶과 백병원 설립의 역사적 의의

이혁상 이사장은 축사를 통해 “설립자 백인제 박사는 우리나라 의학계의 선구자이자 애국자이며, 또 인제대학교 백병원의 자랑스런 역사이다”라며 “1946년 12월 17일 우리나라 최초로 설립된 민립공익법인 재단법인 백병원은 올해 70주년을 맞이하였으며, 백인제 박사의 인술제세(仁術濟世)의 창립이념을 성실하게 수행하며 교육과 진료를 통한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인제대 의과대학 이종태 학장은 개회사를 통해 “이번 심포지엄이 계기가 되어 백인제 박사와 인제대학교 백병원의 유구한 역사성과 인술제세(仁術濟世)이념이 새롭게 인식될 수 있기를 바란다”며 “나아가 민립공익법인을 설립하신 선각자 백인제 박사의 깊은 뜻이 한국 전역에 널리 퍼져나가기를 소망한다”고 전했다.



[1부] 백인제 박사의 삶과 그 의미…민족주의자로 의료발전 선도

서울의대 인문의학교실 황상익 교수는 ‘백인제의 삶과 그 의미’라는 주제발표에서 “백인제 박사는 경성의전에 다니던 1919년 3·1운동에 적극 참여했다가 체포돼 퇴학과 함께 옥고(징역 6월, 집행유예 3년)를 치렀다. 복학해 1921년 수석으로 졸업했지만 3·1운동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의사면허증을 받지 못하고 2년간 총독부의원에 근무한 뒤에야 받을 수 있었다”며 선생의 민족주의자적 삶을 재조명했다. 또한 “백인제 박사는 1930년 조선의사협회 창립을 주도했고, 해방 이후 정치인, 사회활동가, 출판인으로도 활약하였고, 도산 안창호 선생을 흠모해 흥사단에 가입, 활동하며 무실역행(務實力行) 정신을 자신의 삶과 활동에서 구현하려고 애썼다“고 강조했다.


[2부] 한국 근대 사립병원의 발전과 백병원…한국 최초 민립공익법인 백병원 설립

2부는 ‘한국 근대 사립병원의 발전과 백병원’을 주제로 연세의대 의사학과 신규환 교수가, ‘일제강점기 백외과의원의 도시공간적 의미’라는 주제로 고려대학교 CORE 사업단 공혜정 교수가 발표를 이어갔다. 신규환 교수는 “백인제 박사는 서울 중구 저동 현재 서울백병원 자리에 있던 우에무라 외과병원을 인수해 위탁경영하였고, 1941년 교수직을 그만두고 백외과의원을 본격적으로 경영했다”며 “해방 이후 전국 사립병원 현황에서 보듯 백외과의원은 의사수, 병상수에서 열세였음에도 불구하고 외래환자와 입원환자의 수에서 압도적인 진료실적을 보이고 있는데 이를 통해 당시 백인제 박사의 실력과 명성을 가늠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백인제 박사는 해방후인 1946년 12월 17일 사재를 털어 우리나라 최초의 민립공익법인 ‘재단법인 백병원’을 설립하였는데 이는 개인의 사유재산을 공익법인화한 최초의 사례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3부] 민족주의자 백인제 / 교육자 백인제…한국판 메이요 클리닉 지향

3부는 ‘민족주의자 백인제’라는 주제로 경희대학교 사학과 박윤재 교수가 백인제 박사의 흥사단 활동을 집중 조명했으며, 아울러 ‘교육자 백인제’라는 주제로 인제대 인문사회의학교실 김택중 교수가 백인제 박사의 숭고한 뜻을 따르는 후학들의 생애를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박윤재 교수는 “삼일운동 참여의 경험, 안창호와 연계 등은 백인제가 1930년대 중반 이후에도 친일화의 경향에 참여하지 않는 배경이 되었다”며 “일제가 창씨개명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백인제는 자신의 그 이름으로 외과의사의 명성을 쌓아왔다고 거부하였고, 학병출정 권유 강연 역시 거절하였으며, 이후 흥사단에 가입하여 의사부장을 맡는 등 무실역행을 실천하고자 노력하였다”고 말했다. 
김택중 교수는 “백인제 박사는 이재복, 장기려, 김희규, 주영재, 윤덕선 등 한국인 제자를 각별한 사랑으로 지도해 걸출한 외과의사로 키웠고, 이들은 외과학 발전은 물론 의료를 포함한 다양한 영역에서 한국사회에 기여하였다”고 말했다. 또한 “1936년 11월부터 1937년 1월까지 미국 메이요 클리닉을 시찰하면서 느낀 바는 백병원을 민립공인법인화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며 “1930년대 진료, 연구, 교육이 통합된 세계 최고 수준 비영리의료기관 형태의 사립병원 미국 메이요 클리닉을 벤치마킹해 한국의 메이요 클리닉을 만들고자 꿈꿨다”고 밝혔다.